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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 문화생활

역사적 팩트 체크 영화 명당 후기, 재미로 보는 사실과 허구

어제 조승우, 지성, 백윤식 주연의 영화 명당 심야로 보고 왔습니다.
영화 명당의 시대적 배경이나 줄거리에 대한 정보 전혀 없이 그냥 명당을 찾아 떠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 정도로 알고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아, 알고보니 세도정치로 혼란의 시기였던 조선 후기, 땅을 두고 권력을 향한 세도가들의 싸움이 아주 볼만한 실화 기반의 영화네요!

믿고 보는 배우 조승우와 백윤식, 지성의 연기 아주 훌륭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딴 생각 전혀 안 날 정도로 몰임감 최고였습니다.
물론 일부 배우의 연기와 발성이 좀 거슬리기는 했지만...ㅜㅜ
한국사에 관심 높은 1인으로서 CGV 영화관에서 집에 오는 내내 역사적 진실과 거짓에 대해 열변을 토하다 보니, 영화 명당 내용 중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제 나름대로 팩트 체크하면서 정리를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는 한국사 지식 총 동원해서 나름 정리해봤습니다.

영화 명당으로 보는 조선 후기 역사적 팩트 체크,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까요?
영화 명당 후기 스포 있으니 아직 영화 명당을 보지 않으셨다면 스크롤 내리지 말고 나가셔도 좋습니다^^

영화 명당을 이해하려면 일단 시대적 배경과 조선 후기 왕 계보를 알고 보면 더 이해하기 좋을 거 같습니다.

· 조선 후기 왕 계보
   - 22대 정조 (1834~1800)
   - 23대 순조 (1800~1834)
   - 24대 헌종 (1834~1849)
   - 25대 철종 (1849~1863)
   - 26대 고종 (1863~1907)
   - 27대 순종 (1907~1910)

정조가 급작스럽게 승하하고, 11세의 어린 나이로 순조(23대)가 즉위하면서 영조(21대)의 계비였던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됩니다.
이도 잠깐, 1803년 3년만에 수렴첨정이 끝나면서 권력은 순조(23대)의 장인 김조순에게 넘어가게 되고 본격적인 안동김씨 세도정치(유력한 가문이 정치를 주도) 시대를 맞이합니다.
이후 순조,헌종,철종의 3대 60여년간 안동김씨 집안의 세도 정치가 계속되며, 왕실보다 더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며 안동김씨는 조선의 근대화 개혁에 길목을 가로 막게 되죠.

실제 안동 김씨가 왕 위에 앉힌 철종(25대)은 가족과 함께 강화에 유배되었다가 순원왕후(23대 순조의 비, 아버지는 안동김씨 김조순)의 명으로 궁에 들어왔다가 그 해 19세의 나이로 헌종(24대)의 뒤를 이어 즉위하게 됩니다.
평민이나 다름 없이 살았을 정도로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절대 왕이 될 수 없었지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안동 김씨의 권력을 이해할 수 있는 역사의 한 순간입니다.
당시 후사 없이 죽은 헌종(24대)의 뒤를 이어 왕위 계승이 거의 확실시 되던 이하전이 있었지만, 안동김씨측의 농간으로 철종이 대신 즉위하게 되죠.


영화 명당의 배경은 순조(23대)의 아들 효명세자가 21세에 갑작스럽게 죽으며, 그의 묘자리를 선정하는 과정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효명세자는 아버지 순조(23대)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18세 어린 나이에 대리청정을 했으며, 젊은 세자답게 나름 의욕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당시 안동 김씨 계열을 배제하고 장인 조만영(풍양조씨)을 비롯해 여러 인물을 등용시켰습니다.
실제 안동김씨와 풍양조씨 두 외척의 세력 다툼 속에 헌종(24대) 시대 풍양조씨가 집권하기도 했죠.
의욕적이고 건강해 보였던 효명세자는 안타깝게도 영화 내용처럼 각혈한 뒤 며칠 뒤에 승하(1830년)하게 됩니다.
그리고 4년 뒤 1834년, 그의 아들 헌종(배우 이원근 연기)이 조선의 24대 왕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이제부터 본격 스포 포함된 내용 나옵니다!

영화 명당에서 내내 고구마처럼 무능한 왕으로 나오는 헌종(배우 이원근)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네요

가계도를 보면, 순조(23대)의 손자, 효명세자(익종)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풍양조씨 조만영의 딸 신정왕후입니다.
순조(23대)의 사망 후 8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며, 대왕대비 순원왕후(23대 순조의 비)의 수렴청정과 세도정치로 인해 왕으로서는 큰 활약을 하지 못하고 23세에 단명합니다.

■ 팩트체크1 : 영화 명당 내용처럼 헌종 재임 내내 김좌근(배우 백윤식)이 일인자였을까?

영화 명당에서는 헌종 재임 내내 배우 백윤식이 맡은 안동김씨 김좌근이 모든 권력을 다 가진 걸로 묘사되지만, 실제 헌종이 재임하던 상당 기간은 풍양조씨가 안동김씨 세력을 물리치고 세도를 잡기도 했습니다.
배우 백윤식이 열연한 김좌근 또한 순조와 헌종 시대보다는 오히려 헌종(배우 이원근) 이후 철종이 즉위하면서 정권을 장악한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는 헌종 말 이후)

■ 팩트체크2 : 실제 김좌근(배우 백윤식)은 아들에게 살해 당했나?

백윤식이 열연한 김좌근은 1797년 태어나서 고종 6년 1863년 사망했습니다.
즉, 흥선대원군이 아들 고종을 앞세워 섭정한 이후에도 6년이나 더 쌩쌩하게 잘 살아 있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자, 1963년 영의정에서 물러나 실록총재관(왕의 사적을 기록하는 실록청의 으뜸벼슬)으로 '철종실록' 편찬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가야사 절로 이장한게 1844년인데, 1863년까지 19년이나 더 잘 살아 있었으니 역사적으로 논쟁이 될 수 있는 대표적 장면입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배우 지성)에 대한 소개도 필요하겠죠?

인조(16대)의 셋째아들 인평대군의 8세손입니다.
선조,고종과 함께 조선 3대 무능한 왕으로 손꼽히는 영화 남한산성의 삼전도의 굴욕 그 인조 맞습니다.

8세손이 무슨 의미냐!
인조가 1대, 그 아들이 2대... 이런식으로 인조부터 8대까지 왔다는 얘기입니다.
즉, 왕가와는 거리가 아주 먼데, 그의 아버지 남연군이 정조의 이복형제인 은신군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왕위와 가까워지게 됩니다.

한국사에 조금만 관심 있어도 잘 아실겁니다.
배우 지성이 열연한 흥선대원군은 고종(26대)의 아버지이며 고종 즉위 후 10여년 간 섭정을 통해 조선의 실권력을 누렸습니다.
고종의 처 민비와 함께 대립하며 암울한 역사의 한 획을 그어 주신 분이죠.


고종 초기에는 세도정치 종결, 서원철폐, 조세제도 개편 등 나름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쇄국정책과 경복궁 중건 과정의 무리수, 민비와의 대립 등으로 암울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작성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그의 아들 고종 시대를 공부해보면 열화가 치밀어 책장을 넘길 수가 없다니까요!
오죽하면 역사학자들이 조선 3대 무능왕으로 선조, 인조, 고종을 꼽을까요ㅜㅜㅜ

암튼 영화 명당에서는 우리가 아는 흥선대원군의 모습이 아닌, 우리가 잘 모르는 젋은 이하응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영화 지성이 열연한 이하응은 실제 젊은 시절 세도가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가고, 기생집을 전전하면서 장안의 건달들과 어울려 지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왕족이면서도 시정잡배들에게 욕 먹는 경우가 부지기 수였을 정도인데, 그러면서도 안동김씨 일파에게 추파를 던지면서 그들과 연을 이어가게 되면서 영화 명당의 배경이 된 아주 드라마틱한 인생을 펼치게 되죠

■ 팩트체크3 :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정말 가야사 절을 태우고 아버지 묘를 썼는가?

충남 예산 가야산에 위치한 가야사는 실제 2대에 걸쳐서 왕손이 나온다고 알려져 왔던 명당이라고 합니다.
이를 믿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연천군에 있던 부친 남연군의 묘를 이장하여, 1844년(헌종 10년) 가야사 절을 불태우고 묘를 썼습니다.
영화처럼 그로부터 19년 후 고종이 즉위하게 되죠.

영화 명당에서는 안동김씨 김좌근(배우 백윤식)의 아들과 결전을 하며, 가야사 절을 얻게 되지만 실제 역사의 얘기는 좀 다릅니다.
실제 지관 한명이 흥선대원군 이하응에게 가야사 절터를 천하의 명당이라 소개하며, '이 터는 천하의 명당이나 제왕이 두 분만 나올 자리이며, 무덤의 주인은 화를 얻을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이하응은 가산을 팔아 절 주지에게 값을 치르고 절을 불태워버린 뒤 이장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1868년 고종 5년 비록 실패했지만, 실제 흥선대원군 아버지 남원군 묘 도굴 사건인 오페르트 도굴사건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 팩트체크4 : 조승우의 지관 박재상이 실제로 신흥무관학교 터를 잡아주고 이름을 지었을까?

영화 명당에서 배우 조승우가 맡은 지관 박재상이 흥선대원군 이하응(지성)과 동갑이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지관 박재상 조승우는 대략 1820년생입니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6월 만주 삼원보에 설립한 신흥강습소가 발전한 것으로, 신흥무관학교로서 정식 개교한 것은 1919년입니다.
우당 이회영 선생님께서 여섯 형제와 일가족이 전재산을 팔아 만주로 망명하면서 독립운동을 펼친 걸로 너무 유명하죠.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빠지지 않는 김원봉(영화 암살 조승우, 밀정 이병헌) 또한 신흥무관학교 출신입니다.
1910년 경숙국치로 국권을 상실하자 그 해 12월 만주 서간도에 무관학교를 세워 독립운동을 할 구체적 계획을 확정합니다.

지관 박재상이 터 잡아주시려면 우리 나이로 91세... 그 시절에 91세 힘들다고 봅니다
그리고, 영화 명당에서도 조승우의 지관 박재상은 허구의 인물로 소개되는 걸로 봐서 감독과 작가가 만든 허구의 이야기로 보입니다.


영화는 영화일뿐 너무 심각하게 받아드릴 필요 없겠죠?
영화 명당 재미있게 보셨다면 그걸로 만족하면 되는 거고, 영화 속에 담긴 역사적 이야기도 덤으로 배우면 더 좋겠죠?


저는 영화 명당, 이제 내용 다 알았으니 다시 한번 볼까 심각하게 고민중이에요ㅎㅎㅎ
암튼 조승우, 지성, 백윤식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엄지척! 최고였습니다!!!